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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딱 한 구절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간결하고 구체적인 명령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를 일종의 생활 방식으로 삼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가 호흡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호흡처럼 기도는 우리에게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호흡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마땅히 해야 하는 만큼 쉬지 않고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영적 숨을 참는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마치 공기의 압력이 우리를 호흡하게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라는 압력이 우리를 기도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고 명령한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이면서 끈기있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만큼 기도하게 되죠.

저는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원칙을 깊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의 다른 말씀을 통해서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이 말하는 풍성한 내용을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비유를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사실, 주님이 말씀하신 수많은 비유 중에서 이 두 비유는 특별한 이유로 돋보입니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다른 모든 비유는 하나님과의 비교를 통해 전달됩니다. 다른 모든 비유들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과 유사하거나, 하나님의 나라와 유사하거나, 하나님의 방식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이 두 비유는 하나님과의 대조를 통해 설명됩니다.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비유 중에서 이 두 비유만 하나님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여주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제에 대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두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누가복음 11장에 나옵니다. ‘마지못해 주는 친구의 비유’라고도 불리죠. 예수님은 기도라는 맥락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으로 답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기도문 또는 제자들의 기도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2절에서 4절까지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겁니다.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것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의 구성 요소들이죠. 이처럼 예수님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당시에는 추운 날씨에 온기를 나누기 위해서 온 가족이 같은 침대에 누웠습니다. 온 가족이 한 침대에 누워서 따뜻하게 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밤중, 자정이었습니다. 친구를 위해 일어나서 떡을 줄 수 있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다시 말해서, 우정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기 위해서 준다는 겁니다. 친구는 떡을 줄 때까지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친구이기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괴롭게, 귀찮게 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떡을 주게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이 바로 끈기의 이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이 정말 강조하시려는 점은, 하나님은 이처럼 마지못해 주는 친구와는 전혀 다른 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더욱 인상적인 것이죠.

마지못해 주는 친구도 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준다면, 마지못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의 끈기에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이것이 본문에 나타나는 대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1절에서 물고기를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뱀을 주는 아버지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또는 알을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전갈을 주는 아버지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아버지도 자녀에게 해가 될 것을 주지 않습니다. 세상의 아버지도 자녀의 외침에 귀를 기울입니다. 13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이것이 요점입니다.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악하시지 않다는 뜻이죠,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물론 하나님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시지만, 우리의 끈기에 응답하십니다. 만약 진실하지 못한 친구, 마지못해 주는 친구, 동정심 없는 친구, 연민이 없는 친구, 은혜가 없는 친구도 우리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뭔가를 준다면,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연민이 가득하시고 따뜻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끈기 있는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이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가르치신 후에, 말하자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계속해서 끈기 있게 기도하면 선하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에 이처럼 대조를 통해 메시지를 드러내는 비유가 또 나옵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함을 보이시려고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각적인 응답이 없더라도,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계획한 대로 빨리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 항상, 끊임없이, 계속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재판장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판장이 되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누군가가 과부의 변변찮은 재산을 빼앗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나 봅니다.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합니다. 4절입니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귀찮고 괴롭게 하니 요청을 들어주겠다는 겁니다.

6절입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다르시고 마지못해 주는 친구와도 다르십니다. 하지만 마지못해 주는 친구와 불의한 재판장조차도 끊임없는 간청 때문에 요청받은 일을 해줬습니다. 그렇다면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롭고 친절하시며 마음이 따뜻하신 하나님은 더 많이 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말씀의 요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끈기 있게 꾸준히 항상 기도하라.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 두드리고 구하며 찾으라. 그러면 선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신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은혜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이러한 비유가 예수님의 다른 가르침과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예수님의 다른 말씀을 보면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마태복음 6장 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렇게 묻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건 모순 아닌가요? 기도할 때 반복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의미 없는 반복을 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의미 없는 반복이란 무엇일까요? 이방인의 기도 방식입니다. 이방인들은 많은 말을 해야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동정심, 열정, 고통, 갈망,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식, 종교 의식, 의례, 만트라, 노래, 염주, 문구의 반복을 통해서 신이 원래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의미 있는 반복을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간청을 금하신 것도 아닙니다. 빈 의례, 마음 없이 입으로만 하는 말, 하나님이 마음이 아니라 말 때문에 응답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금하신 겁니다.

따라서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반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예수님이 누가복음 11장과 18장에서 가르치신 원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외침 때문에 들으시는 것입니다. 떡이 필요했던 사람은 친구의 집에 가서 형식적이고 의례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간청했습니다. 재판장에게 간청했던 과부는 만트라나 주문, 의례적 기도문을 외우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을 다해 부르짖고 마음을 다해 반복해서 기도하면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됩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끊임없이 쉬지 않고 교제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밤새 기도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기도로 끊임없이 교제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고 말합니다. 흥미로운 통찰입니다. 예수님은 놀랍도록 강렬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비록 성경에 예수님의 모든 기도가 세부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러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힘써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하셨다고 말하는데, 우리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강렬함이 있었을 겁니다.

이 감람산 기도,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얼마나 강렬한 기도를 하셨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고전적인 사례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될 만큼 고뇌 속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은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42절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는 계속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기도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될 만큼 기도하시게 만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던 겁니다. 마태복음 26장 38절에서 46절까지를 보면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충격적입니다. 정말이지 길고 긴 기도였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도하셨는지 제자들은 잠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길고 긴 고통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매우 특별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제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힘쓰고 애쓰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비록 성경이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갔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신약성경 어디에도 기적을 행하시는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맹인을 보게 하실 때도, 못 듣는 자를 듣게 하실 때도, 말 못하는 자를 말하게 하실 때도, 병자를 고쳐주실 때도, 다리 저는 사람을 걷게 하실 때도,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도, 5천 명의 남자를 포함해서 여자와 아이들까지 약 2만 명을 바닷가에서 먹이실 때도, 폭풍을 잠잠하게 하실 때도, 물 위를 걷게 하실 때도 말입니다. 어떤 경우든 기적을 행하시기 위해 기력을 쓰셨다거나, 고된 노력을 하셨다거나, 땀을 흘리셨다거나, 땀이 핏방울 같이 떨어질 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어떤 노력도 긴장도 고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고통을 느끼셨고, 마음의 깊은 갈등이 육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핏방울을 흘릴 정도의 고통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과 18장에서 말씀하셨던 끈기로 말이죠. 바로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기록할 때 염두에 두었던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는 처음부터 이렇게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은 오순절 날 전에 모든 믿는 자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사도들은 교회를 조직하면서 사역을 정립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니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사도행전 12장에서는 다시 한 번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자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의 특징은 간절한 기도, 끊임없는 기도, 지속적인 기도였습니다.

서신서를 보면 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어디를 읽든지 바울은 신자들에게 기도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도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는 서신서는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여기에도 동일한 개념이 나타납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최근 연구하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이는 생활 방식으로서의 기도, 끊임없는 기도, 쉬지 않는 기도를 말합니다.

골로새서에 참 좋은 증언이 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에바브라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에바브라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이처럼 끊임없고 지속적이며 끈질기고 강력한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마음이 낼 수 있는 최고의 힘이며, 기독교인이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일견 맞는 말 같아 보이죠. 하지만 기도를 어떤 강력한 힘이자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성취로만 생각한다면, 기도가 삶의 중요한 순간에만 국한될까 염려됩니다. 물론 삶의 중요한 순간에도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는 일상생활을 이루는 끊임없는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는 강렬함이 필요합니다. 강렬함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기도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그러니까 기도에는 힘이 넘치고 고귀한 순간들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의 한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더 강렬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기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기도를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죠. 이 단어는 찬양일 수도 있고, 감사일 수도 있고, 고백일 수도 있고, 간구일 수도 있고, 중보일 수도 있고, 복종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일반적인 의미의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반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끊임없이 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복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생활방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속해서 기도의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거의 항상 기도하는 중에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기도하는 중에 깨어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항상 의식하며, 때로는 더 강렬하게, 때로는 덜 강렬하게, 하나님과 열린 상태로 교제하는 것이 제 삶의 본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잠들고 기도 중에 깨어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성경에는 아침에 기도하는 사람, 정오에 기도하는 사람, 밤에 기도하는 사람, 하루에 일곱 번 기도하는 사람, 한밤중에 기도하는 사람, 밤새 기도하는 사람, 새벽 전에 기도하는 사람, 며칠 동안 기도하는 사람, 몇 주 동안 기도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길게 기도했고, 어떤 사람은 짧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어떤 사람은 서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침대에 누워서 기도했고, 어떤 사람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을 들고 기도했고, 어떤 사람은 손을 내리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을 내밀고 기도했고, 어떤 사람은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기도했으며, 어떤 사람은 얼굴을 위로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장소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이제 오늘 본문인 1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17절은 16절과 일종의 짝을 이룹니다. 16절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죠.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 두 구절은 영적 삶에서 한 쌍을 이루며 아름다운 균형을 이룹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자신이 불충분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불충분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충분하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에 응답하셔서 복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족함을 끊임없이 느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시는 모든 일에 계속해서 감사하고,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회개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계속해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말 없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수문을 열게 하여 우리의 기쁨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기뻐할 뿐만 아니라 그 기쁨으로 가는 길인 끊임없는 기도의 길로 가야 합니다. 기도는 복을 가져오고, 그 복은 기쁨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7절은 이 전체 문맥과 어떻게 일치할까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교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기를 원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좋은 교회이자 위대한 교회, 고귀한 교회, 영적인 교회였지만, 바울은 더 나아가 건강하고 성숙한 양 떼로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생긴지 몇 달밖에 안 되는 신생 교회, 어린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성장 계획을 제시합니다. 12절과 13절은 건강한 양 떼로 성장하려면 목자와 양, 양과 목자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4절과 15절에서는 양과 양 사이에도 올바른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6절부터 22절에서는 양과 목자장 사이, 즉 양과 예수님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목회자, 성도와 성도,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 등 여러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도 그 교회 성도들의 영적 수준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항상 기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는 방법이며, 성장하는 교회, 건강한 교회에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활용해야 하며, 문을 두드려야 하고, 떡덩이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사건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해결되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구절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의미를 잘 이해하게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이 구절 뒤에 있는 의미를 조금 더 탐구하고, 기도에 동기를 부여하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충분히 기도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저는 늘 기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계속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항상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부분적으로는 실제로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기도를 부탁받는 입장에 있다 보니 기도제목이 너무 많아서, 저도 인간인지라 다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런 부담감이 저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제게 정말로 기도의 동기가 있는지, 기도할 때임에도 왜 기도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기도의 동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열 가지 동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끊임없이 기도 생활을 하게 해 주는 열 가지 동기입니다.

첫째, 주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기도는 이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다니엘 9장에는 구약시대 기도의 위대한 모범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했고, 약속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너희를 포로로 잡아둔 기간이 지나면 너희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는 가운데 그 약속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기도한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며, 주께서 하신 약속이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니엘 9장 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만일 이렇게 하시면 주의 이름이 높아질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주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주님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따라서 저는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기도의 동기는 주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하는 이유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말하며, 주님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첫 번째 동기는 주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갈망한다면 그렇게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높임을 받으소서, 영광을 받으소서, 높임을 받으소서, 주님의 목적을 이루소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고 외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둘째입니다. 기도의 두 번째 동기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42편에서 이 진리를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느낌, 고립된 느낌, 외로움을 느끼며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동행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시편 63편은 좀 더 장엄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주님을 보고 싶고, 주님과 함께 하고 싶고, 주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고 싶다고 합니다. 시편 84편의 첫 두 절도 동일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러한 심정을 가장 장엄하게 표현한 구절은 시편 27편입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있고 싶다고 합니다. 이러한 심정이 여러분에게도 있습니까? 하나님과 달콤한 교제를 나누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까?

기도에 대한 세 번째 동기, 끊임없이 계속되는 기도에 대한 동기는 필요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욕구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필요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필요도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1절에서 가르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기도하게 하는 올바른 동기입니다. 물론 우리 중 일부만이 이러한 동기로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매일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많은 형제들은 일용할 양식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소중한 형제 샘과 아내 노라를 기억하시죠? 이 부부는 아프리카로 다시 사역하러 돌아가기 전에 우리 교회에서 6년 정도 있었습니다. 샘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나왔습니다. 전 세계에는 미국과 같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샘은 아프리카에서 당뇨약조차 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꽤 낯선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않아도 은혜롭게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관심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기도의 네 번째 동기는 지혜에 대한 갈망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만일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로 속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저는 이것이 영적 분별력을 위한 기도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지혜를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 제가 유혹을 마주할 때 성령님을 통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제가 악한 길로 인도될 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발 유혹에서 저를 구하시고 악한 길로 빠지지 않게 하소서. 제게 지혜와 분별력, 통찰력을 주시고 성경에 민감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사탄의 함정, 육신의 함정, 세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무엇이 기도, 끊임없는 기도를 이끌어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갈망, 필요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갈망, 그리고 이 세상의 위험 속에서 지혜롭게 걸어갈 수 있는 지혜에 대한 갈망입니다.

다섯번째입니다. 기도는 고난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됩니다. 시편에는 이와 관련된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모든 것을 요약하는 구절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 20편 1절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큰 고난을 마주했을 때 끊임없이 기도하게 되지 않습니까? 고난이 클수록, 겪는 고통이 클수록 우리가 지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지로 인해 함정에 빠진 것이기에 그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요나가 떠오르시지 않나요? 요나는 매우 구체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기도했습니다. 요나 2장 1절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가 가장 먼저 한 기도는 무엇인가요? 모든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장황하게 기도했지만 결국 “나를 꺼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나를 꺼내주셨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요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요나를 구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어려움, 압박, 스트레스, 고통,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기도하게 합니다.

여섯 번째 동기는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혜롭고 영적으로 성숙하다면 말이죠. 빌립보서 4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두려움과 걱정, 불안 속에 있을 때, 고통이나 우울함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두려움, 우울, 고통, 걱정으로부터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신다는 겁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원하면 사람에게 가십시오. 그러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해결책을 원하면 하나님께 가십시오. 두려움, 걱정, 불안, 감정적인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 공식은 간단합니다. 주님께 나아가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 외의 방법을 찾는 걸까요?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그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4편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과거에 그렇게 하셨기에 다시 한 번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의 일곱번째 동기는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선하신 일을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44편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이 기도는 찬양입니다. 자신을 위한 찬양이 아니라, 과거에 하나님이 다른 이들을 위해 하신 일들에 대한 찬양입니다. 구속의 역사 전반에 걸쳐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이 나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 좋은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저는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과 현재 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 감사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에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감사하는 기도를 하게 될 겁니다.

여덟번째 기도의 동기는 매우 중요한 동기 중 하나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죄책감에서 자유하려는 마음입니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통회 시편인 시편 32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의 많은 구절을 인용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시편 32편만 살펴보겠습니다. 3절부터 읽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다윗은 죄책감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토로합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상태가 엉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액이라는 표현은 혈액 순환, 침 분비 등 체액에 의해 작용하는 신경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액이 빠졌다는 것은 침이 마르고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생리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겁니다. 신경계도 엉망이 되었고 열병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윗은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은 고백했고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시편 32편 첫 부분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고백하니 용서를 받고 복을 받았습니다. 끊임없고 지속적인 통회하는 기도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홉 번째 기도의 동기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낄 때 지속적인 기도를 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들은 우리 주변에 가득합니다. 이들의 구원을 염려하고 있다면 길에서 만나거나 문득 생각날 때마다 끊임없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무엇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까?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기도를 촉발합니다. 만일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열번째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는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은 무엇을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지혜와 지식, 깨달음, 소망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들의 삶에서 펼쳐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16절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은 성도들의 영적 능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9절입니다.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절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기도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렇죠? 무엇이 여러분을 기도하게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할 때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할 때에, 모든 자원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원할 때에, 지혜와 분별력을 갈망할 때에, 삶의 고난에서 구원받기를 바랄 때에,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때에, 과거와 현재에 받은 모든 복에 감사할 때에, 죄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때에, 다른 이들의 구원을 갈망할 때에, 그리고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하고, 그 기억이 여러분을 항상 기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죠? 따라서 영적 상태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갈망에 문제가 있거나 근본적인 동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동기를 어떻게 자극할 수 있을까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제 기도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동기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저의 기도를 자극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성령님이 저를 감동시키셔서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진정으로 갈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드러날 때 저는 다니엘처럼 됩니다. 하나님이 미래의 영광을 계획하셨음을 읽고 나면 제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는 갈망이 일어납니다. 이는 요한이 요한계시록의 끝에서 장차 그리스도가 받으실 영광을 이야기한 후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외친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외침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영광스러운 계획을 바라볼 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어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며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 말씀 속에서 드러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위격과 성품, 위엄을 더 깊이 알게 될 때,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갈망이 더 커집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하나님이 자녀들을 위해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또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놀라운 분별력과 무궁한 지식을 발견할 때, 저는 그와 같은 지혜가 제 지혜가 되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말이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계속해서 구원하신 것과 동일하게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보게 되면, 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고난에서 구원받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수많은 종들을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에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발견할 때, 믿음의 선조들이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고 불타는 용광로의 가장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서 있었던 것을 볼 때, 저도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따라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저를 완전히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불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 성경에서 하나님이 과거에 백성들에게 주신 복과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 구속 역사 전체에서 드러나는 영광, 지금까지 이루신 구속 역사를 발견할 때,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구속의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광과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축복, 하나님의 말씀의 보화를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완전한 용서와 구속 계획의 위대함을 깨닫고, 그것이 어떻게 제 삶에서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이루어졌는지, 그리하여 매 순간 완전한 용서와 정결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13장과 마태복음 23장에서 구원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거부하는 이들을 위해 흘리신 하나님의 눈물과 예수님의 눈물을 보며, 저도 하나님처럼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즉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에게 순종과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지속적인 부르심을 보면서,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속적이고 일관된 기도 생활을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구체적인 갈망이 마음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갈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깊이 연구함으로써 생겨납니다. 말씀 연구는 말씀을 매번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드러내어 기도 생활을 자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항상 새로운 형태의 기도에 헌신하게 됩니다. 바울이 기록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기도가 우리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요한일서 3장 22절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가 주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복을 받고 주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계획임을 고백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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