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사역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참되다고 확신하며, 성경의 모든 단어, 모든 절, 모든 장, 모든 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분명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 그렇게 하기로 하셨습니다. 저는 며칠 전 저녁에 CNN에 다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벌였죠. 이것이 제 운명인 것 같습니다만, 상대편 사람들이 보통은 굉장히 불쾌하게 굴죠. 불신자들, 다른 종교 지도자들, 다른 도덕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제게 토론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만 말하면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유일한 구주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권위라는 겁니다. 저는 어떻게든 이 두 가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의견에 맞서 하나님 말씀만이 유일한 권위라는 것과, 인간의 모든 종교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토론에서 동성애 옹호자이자 자칭 로마 가톨릭 신자는 제가 성경에 나오는 단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전체 메시지를 놓쳤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고방식 아닙니까? 성경에 나오는 단어에 너무 집착해서 전체 메시지를 놓쳤다니 말이죠.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떠나서 어떻게 성경의 메시지를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종류의 신비주의적인 헛소리가 수백만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들은 성경이 실제로 말하는 것 이상으로 잠재의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책을 주셨고, 그 책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정확히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그대로이며,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대로 행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중얼거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과 우리에 관한 문제들을 분명하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시된 말씀인 성경에서 진리를 말씀하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모든 진리를,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셨다고 말이죠.
이것은 사실입니다. 모두 사실이며, 성경 안에 거짓된 것은 없습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기를 원하신 모든 진리입니다. 계시하지 않으신 나머지에 대해서는 영원 속에서 알게 될 겁니다. 오직 성경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참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순이 없으십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상반되는 내용의 다른 책을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성경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다른 모든 계시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인간의 창작물일 뿐이죠. 그것도 대부분 마귀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겁니다. 예를 들어 코란, 바가바드 기타, 메리 베이커 패터슨 글로버 프라이 에디의 글, 몰몬경, 조셉 스미스는 물론이고 모든 거짓 선지자, 모든 예언자, 모든 이단, 모든 종교 창시자, 모든 종교 지도자, 모든 세계 종교는 모두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과 마귀에 의해 날조된 겁니다. 모두 잘못되었죠. 하나님은 오직 한 권의 책으로 말씀하셨으며, 그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로써 문제가 단순해집니다. 종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가 있기 때문에 종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복잡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종교를 관용해야 하고,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결국 같은 천국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를 주장합니다. 성경과 모순된 것, 성경 이외의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의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성경에 담겨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구성된 한 권의 책, 약 1500년 동안 40여 명의 저자가 기록한 66권으로 구성된 책에 말이죠. 성령님이 이 모든 것을 저술하셨고 우리가 성경으로 알고 있는 책에 모두 하나로 모아 놓으셨습니다. 이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일한 권위로 확립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유일한 의무는 이 한 권의 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 권의 책에 대한 반응, 이 책이 말하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로 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합니다.
몇년 전에, 상당히 오래 전에, 일부 개신교 교단들은 이단을 제거했습니다.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 개신교 교단들은 이단을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진리를 방법으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단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라는 개념을 제거해서 이단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해 버렸다는 겁니다.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없다면 이단도 없겠죠. 고정된 진리가 없다면 오류도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면, 성경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제안 정도로 여기거나 기껏해야 다른 종교 서적과 동일한 수준의 책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믿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면, 불변하는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따라서 이단도 없는 겁니다.
이렇게 그들은 이단을 제거하면서 진리라는 개념도 함께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래된 자유주의 개신교 교단들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주 전에 제네바에 있는 칼빈의 교회, 생 피에르 대성당에서 말씀을 전한 것이 큰 행사가 된 겁니다. 교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 교회라고 공언하는 그곳에서, 제 설교 전에 마지막으로 있었던 큰 행사는 다름아닌 불교 행사였습니다. 불교 행사였죠. 이러한 사실이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 제게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을 때 교회 측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불교도를 위한 예배를 드렸다면, 성경을 위한 예배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불교도들이 길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기독교 개신교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 교회는 또한 세계적인 교회일치운동 단체인 ‘세계 교회 협의회’, 즉 WCC를 탄생시킨 모교회입니다. 이들은 이단을 포용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쉬운 일이었죠. 절대적 진리를 제거하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오늘날 이러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복음주의 내에도 새로운 형태의 포용주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리가 없다고 주장해서 오류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것을 흐리게 하는 겁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악된 반란에도 성경은 바뀌거나 변경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합리주의의 공격을 받든, 자유주의의 공격을 받든, 신정통주의라고 불리는 것의 공격을 받든, 다원주의나 신비주의, 포용주의, 정치적 정당성, 관용 또는 다른 어떤 공격을 받더라도, 성경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성경은 영원한 책입니다. 변하지 않는 책입니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모루와도 같습니다. 대장장이가 망치로 모루를 내려치는 이야기 말이죠. 여러 해가 지나면서 수많은 망치가 부서졌지만 모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내리친 망치들은 부서져 잔해가 되었지만 성경은 여전히 굳건히 서 있습니다.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이 사실임을 아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깨우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이 점을 다루었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녹음본을 통해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누가 성경을 믿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성경이 주장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이해력을 깨우치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우리를 확신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이 참되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볼수록 이러한 확신이 성경이 주장하는 바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성경의 영감성에 대한 성경의 내적 증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의 영감성을 믿는지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말씀에 대한 확신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이 주신 확신을 굳건하게 하는 데 성경의 내적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개인적인 경험으로 성경의 진실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행한다면 여러분은 그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죄를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면 여러분은 거듭나게 될 겁니다. 여러분의 삶은 변화될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방식을 바꾸실 것이며, 삶에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성경을 경험하는 것은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경건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경험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술취한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분홍 코끼리를 봤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을 통해 성경을 검증할 수 있다.” 다른 책들이 세상에 대해, 물리적 세계에 대해 터무니없고 황당하며 과장된 주장을 하는 반면, 성경은 물리적 창조에 대해 과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진술합니다. 심지어 현대 과학으로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지기 전에 기록되었는데도 말이죠. 성경은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태양이 태양계를, 우리 태양계를 우주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끌고 간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물의 순환 구조가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잘 묘사되어 있죠. 또 오늘 오전에 읽어드린 구절은 산의 무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각평형(isostasy)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가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예를 들어, 균형이 잡히지 않은 농구공을 굴리면 이리저리 마구 움직일 겁니다. 만일 지구가 그렇게 움직인다면 우리는 시도때도 없이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말겠죠. 하지만 지구는 완벽하게 회전합니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과학에서 말하는 지각평형입니다. 오늘 오전에 읽었던 것처럼 저울로 언덕을 달아 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성경을 과학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럴수록 성경이 놀랍도록 과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1903년에 사망한 허버트 스펜서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허버트 스펜서는 과학자였습니다.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고, 획기적인 과학자로서 상도 여러 개 받았습니다.
스펜서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범주화입니다. 허버트 스펜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섯 가지 범주 중의 하나에 속한다고 학계에 발표했습니다. 바로 시간, 힘, 행동, 공간, 물질이죠. 정확하게 이 순서대로 말했습니다. 시간, 힘, 행동, 공간, 물질입니다.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태초에”, 이것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힘입니다, “창조하시니라”, 이것은 행동입니다, “하늘과”, 이것은 공간이죠, “땅을”, 이것은 물질입니다. 바로 성경의 첫 구절이죠. 비록 허버트가 성경에서 이러한 사실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성경을 바라볼 수 있고 과학이 성경을 입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일반적인 사실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경험보다 좀 더 나은 일반적인 사실 말이죠. 이것도 꽤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할 순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언은 어떤가? 성경에는 실제로 이루어진 예언들이 많다.”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부분은 사실이고, 경험적으로 증명되는 부분 또한 사실이다.” 하나님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국가들이 실제로 멸망했고,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실제로 세상이 물에 잠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자연과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기록할 수 있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경을 이해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고고학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중동의 유적지와 박물관에 가면 로제타 스톤에서부터 특정한 벽화가 그려진 이집트의 동굴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즉 애굽에 실제로 갔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모세 시대 이전의 법률 체계를 찾을 수 있는데, 인간이 처음부터 법 아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무에서 그네를 타던 자유분방한 원숭이가 아니었다는 거죠. 성경에서 언급된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리고의 무너진 성벽이 그렇습니다. 바깥쪽으로 평평한 다소 특이한 형태로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묘사된 여리고 성벽 붕괴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고고학으로 입증되는 성경 말씀은 절대적으로 사실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과학적으로 부정확한 것은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과학은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입증합니다. 이렇게 묻는 분도 있을 겁니다. “태양이 멈췄다고 한 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글쎄요, 분명한 것은 태양이 멈춘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을 멈췄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관점에서는 태양이 멈춘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면서 “지구가 자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실제로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 겁니다.
태양은 우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인식으로는 일출이라고 하고, 일몰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표현되어 있지만, 성경의 그 어떤 것도 과학과 모순되지 않고, 역사와 모순되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몇 주간 살펴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성경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성경의 주장을 들어야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들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단어가 두 개 있는데요, 바로 성경의 무류성과 성경의 무오성입니다.
먼저 성경의 무류성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무류성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간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오성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류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모든 문제에 있어서 확실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참된 규칙과 지침을 준다고 해 보겠습니다. 무류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성경 전체를 말해봅시다. 성경은 그 전체가 진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늘을 나는 새의 눈으로 큰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넓은 관점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무류한 책입니다. 즉, 성경 전체가 주장하는 바는 참됩니다. 시편 19편 7절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시편 18편 30절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여기서 순수하다는 말은 시험되고 조사되어 사실로 증명되었다는 뜻입니다.
시편 119편입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편 111편 7절입니다.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로마서 7장 12절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신명기 4장 2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요한계시록 22장 18절부터 19절에서는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전체가 완전하고 정확무오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이렇게 하나님 말씀의 경륜은 매우 놀랍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성경을 폐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이 마치 사슬과 같다는 겁니다. 모든 구절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장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66권의 모든 책들이 연결되어 있고,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곳에서도 끊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사슬에는 끊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그 전체로 참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장하는 바이며 우리에게 요구하는 확신과 신뢰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무오성입니다. 무오성이란 벌레의 눈으로, 그러니까 좁은 관점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 단어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단어는 참됩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원본의 모든 단어에는 오류나 거짓, 실수가 없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 전체가 진리인 것은 모든 단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부분에서 참되기 때문에 그 전체가 참됩니다. 성경은 모두 진리이며 진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잠언 30장 5절부터 6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잠언 30장 5절부터 6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시편 12편 6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기자는 말씀의 순결함을 표현하기 위해 일종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140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따라서 넓은 관점에서 성경의 무류성에 대해 말하든, 좁은 관점에서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말하든, 이 두 단어를 조합해서 성경의 진실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참됩니다.
이제부터 여러 성경 구절을 말씀드릴 겁니다. 찾아보다 포기하지 마시고 그냥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65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10장 10절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참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도 구약성경처럼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3장 33절은 하나님의 참되심에 대해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일서 5장 20절입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또한 성경은 세 번에 걸쳐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민수기 23장 19절, 디도서 1장 2절, 히브리서 6장 18절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무류하고 무오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진리이신 하나님이 기록하신 책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시며, 진리 외에는 아무것도 말씀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책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문자 그대로 수천 번 이상 자신들이 쓴 내용이 진실하다고 주장합니다. 2천 번 이상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성경에만 2천 번입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와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는 이사야 1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이사야는 위대한 계시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성경의 점과 획까지도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야고보서 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하나님 말씀에서 작은 부분이라도 어기면 모두 어긴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 전체가 참되며, 하나님이 말씀 전체를 지키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저자들은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약 4천 번 언급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직접적으로는 약 2천 번 주장합니다. 그러나 간접적인 언급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4천 번 자신들이 쓰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약 320번 인용하고, 적어도 천 번 구약성경을 언급합니다. 그렇게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의 무류성과 무오성을 확증합니다. 또한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이제부터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정말 놀라운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사도 바울이 등장합니다. 먼저 서신서의 일반적인 인사말로 시작하죠. 이어서 갈라디아서 1장 1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15절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복음의 내용과 사명을 하나님께 직접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도에게만 주어지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구약 저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방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이자 신약의 저자 중 한 명인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을 보면 이것이 어떻게, 아, 먼저 갈라디아서 4장을 보겠습니다. 방금 생각났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잠시 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했나요? 30절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창세기 21장 10절과 1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면서 성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 4장을 보겠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또 하나 나옵니다. 로마서 4장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성경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성경을 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감을 받아 신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구약을 성경으로 확증했습니다. 이 길을 좀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디모데전서 5장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는 두 개의 인용문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두 인용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째 인용문입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신명기 25장 4절 말씀이죠. 단순한 의미는 “소에게 먹이를 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유를 적용하자면 섬기는 사람들을 잘 돌보라는 겁니다. 일종의 격언과도 같습니다. 소가 일하기를 바란다면 먹이를 주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때 그 사람의 형편을 잘 돌보라는 그런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하면서 신명기 25장 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계속 18절입니다.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성경 어디에 있을까요? 구약성경 어디에 있을까요? 구약성경에 없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10장 7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죠.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니까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도 성경이고,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도 성경이라는 겁니다. 신약성경의 한 저자가 구약도 성경이고 신약도 성경이라고 증언한 것이죠. 바울은 누가의 기록을 성경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베드로후서 3장을 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바울도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썼다는 겁니다. 15절 상반절을 보면 말이죠. 다음으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러니까 베드로는 바울의 특정한 편지에서 모든 편지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13개의 서신서이죠.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들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무엇과 같이 억지로 풀었다고요? 네, 성경입니다.
베드로가 바울의 편지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까?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일부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바울이 누가의 글을 성경이라고 부른 것은 서신서의 주요 저자가 복음서 저자를 확증하는 겁니다. 이처럼 베드로도 바울의 글을 성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사실 바울의 모든 편지가 성경입니다. 유다서 17절로 넘어가서 이 길을 따라가 봅시다. 유다서 17절입니다. 유다서는 단 한 장뿐이죠. 17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말이 정확히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베드로후서 3장 3절입니다. 유다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베드로후서를 인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유다는 베드로를 확증합니다. 베드로는 바울을 확증합니다. 바울은 복음서 저자를 확증합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두고 애원하지 않습니다. 요란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저 웅장하면서도 조용하게 말할 뿐입니다. 너무나 명백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부풀릴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여기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습니다.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의 저자이시며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으로부터 지시를 받습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22장 6절입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그러니까 모세오경에서부터, 즉 창세기를 성경으로 인용하는 신약 성경 저자들로부터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는 것까지, 성경 저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분명하고 강력한 내적 증거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살펴보고 싶은 또 다른 증언이 있습니다. 말씀드릴 것이 더 많지만 다음 시간에 해야겠죠? 예수님의 증언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어떻게 보셨는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마태복음 5장 17절과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26장 24절에서는 십자가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몇 절 뒤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4절입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또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한 성경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진리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입니다.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누가복음 18장 31절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경을 어떻게 보신 건가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성경의 특정한 단어에 집중하기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22편 1절입니다. 여러 예시가 있지만, 시편 22편 1절은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님은 실제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장 46절이죠.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또한 구약의 위대한 진리를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가 실제로 일어났으며 아담과 하와가 실존했던 인물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절부터 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고,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겁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를 믿으셨고, 그것을 입증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문제가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라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에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여기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요약하면 세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사실이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구약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경을 폐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오류가 있지만 예수님이 몰랐다는 겁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알고 계셨지만 덮으려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에다 은폐자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오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가 사실이라면, 즉 오류가 있지만 예수님이 모르셨다고 한다면, 분명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신 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무시하고 완전히 잊어버려도 됩니다. 세 번째가 사실이라면, 예수님이 오류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덮으려고 하신 거라면, 예수님은 마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신성을 믿으려면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의 무류성과 무오성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어떻게 기록하셨는가?” 궁금하신가요? 좋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시작도 못하니까요.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복의 원천입니다. 잠언 8장 34절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듣는 자는 복이 있나니.” 누가복음 11장 28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둘째로 성경은 덕의 원천입니다. 시편 119편 11절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성경은 깨끗하게 하는 원천입니다. 요한복음 15장 3절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성경은 승리의 원천입니다. 성령의 검으로 우리는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마귀를 물리칩니다. 성경은 성장의 원천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능력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성경은 인도하심의 원천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일한 책이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책이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따르면 성경은 우리를 찔러 쪼개기까지 할 수 있지만, 베드로전서 1장에 따르면 다시 온전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왜 이토록 강력할까요?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 걸까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경의 영감성이라는 위대한 교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을 성경에 담으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 스스로가 성경의 진실성, 무류성, 무오성, 영감성을 증언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거짓말하실 수 없는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참되며 진실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참되며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진리를 알고, 진리를 이해하고, 진리대로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거짓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된 것은 정말이지 복된 일입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심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제 우리에게 진리가 있으니, 진리를 사랑하고 갈망하게 하옵소서. 배우고 선포하고 수호하게 하옵소서. 오직 진리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끝

This article is also available and sold as a book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