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는 성령님의 위격과 사역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데도 가장 많이 간과되는 분이시고, 또는 성령님과 전혀 관계없는 일들이 성령님의 사역으로 돌려지곤 합니다. 우리는 현대판 성령 모독, 그러니까 성령님을 근심케 하고, 성령님을 소멸하고, 심지어 성령님을 경멸하기까지 하는 이 시대의 흐름을 다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이를 통해 성령님을 참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이 주제를 다루면서 로마서 8장을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일종의 닻이 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로마서 8장을 해설하는 것 이상을 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해왔듯이 말입니다. 저는 본문에서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이 일이 중요할까요? 왜 이렇게까지 중요한 걸까요? 여러분이 신자로서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되었고,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 안에서 걸으며, 성령의 은사를 신실하게 나타내고, 성령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생활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님의 사역으로 잘못 돌려지는 것들과 대조되는 성령님의 참된 사역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성령님의 사역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신자의 삶에서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즉 우리 주님이자 구주이신 예수님의 삶에 나타난 성령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 아침 제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물론 로마서 8장 12절과 13절을 통해서 결론을 내겠지만, 잠시 후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역자이십니다. 어떤 저자가 “모태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보좌까지”라고 표현한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의 모든 사역, 탄생부터 죽음, 부활을 거쳐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역은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서, 그리고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범이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삶을 이해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 성령님의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삶을 사셨다는 것과, 여러분 안에도 동일한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삶의 모범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모범이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삶의 모범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모범을 우리에게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완벽하게 말입니다.
그렇다면 맨 처음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 26절입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마리아는 아마 열 두살에서 열 세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한 소식을 전합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이런 일은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는 놀라기도 했거니와 당황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 애씁니다. 천사가 30절에서 말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그리고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구주이신 분의 어머니가 될 거랍니다.
지금 이 모든 일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인데, 첫 번째 같은 경우는 마리아에게 즉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일입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아주 현실적입니다. 모든 것이 경이롭게 들리지만 처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그러자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동일한 말을 두번 하는 겁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란 곧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활동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시요, 하나님의 ‘루아흐’이십니다.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의 강력한 힘, 에너지, 능력이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신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것입니다. 마리아 위에 머물 것입니다. 익숙한 장면 아닌가요? 창조 때로 돌아가보면, 하나님이 창조에 사용하실 무형의 물질 위에 성령님이 운행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면서 6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창조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성령님이 임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거룩한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처녀로서 남자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아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그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거룩한 아기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성육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잉태되신 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잉태, 즉 하나님이시요 인간이신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것이 바로 성령님의 창조 사역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성령님은 예수님을 결코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모태에서의 9개월과 승천에 이르기까지, 성령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한결같이 함께하신 동역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거룩하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두고 이렇게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아기, 유년기,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30년은 어땠는가? 그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글쎄요, 거기에 대해서는 한 가지 사건으로 어렴풋이 알 수 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었을 때에 부모님과 함께 성전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비록 하나의 사건이지만,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이 사건이 예수님의 전 생애, 생애의 전 과정을 묘사한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9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심을 인식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신학은 이때부터 이미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계시면서 아버지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비록 이 사건은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지만, 예수님의 전 생애, 발달과 성장의 전 기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장하시면서 힘과 지혜가 자라가셨고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인식하고 그 일에 자신을 바치시면서 지식도 쌓으셨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능력은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이사야 11장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위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11장 1절에서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기록하며 다윗의 후손이신 메시아가 오실 것을 전했습니다. 이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 구절입니다. 예수님 생애의 어떤 특정한 시기나 사건에 관계없이,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결정적인 선언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시리니.”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기록하게 하신 것 그대로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예수님의 성장과 발달, 힘과 지혜와 지식, 예수님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전 생애에 걸쳐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신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이사야 42장에 또 다른 메시아 예언이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그러니까 고난받는 종 메시아를 말합니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우리는 모든 영적 성장이 성령님이 역사하신 결과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속성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포기하시고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고,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아버지의 계획에 완전히 순종하신 것도 성령님이 역사하신 결과라는 것 역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신 성령님의 산물입니다. 지혜와 지식과 은혜가 자라가고 아버지의 계획을 인식하고 이해하신 그 모든 일은 예수님 위에 강림하신 지혜와 지식과 힘과 능력의 영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잉태에서부터 탄생과 생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정하신 그 모습으로 자라게 하는 원천이셨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이끄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속성을 제쳐두고 성령님의 능력에 순종하여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서 자신을 빚으시고 만드시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 2장에서 읽을 수 있는 예수님의 영적 성장과 성숙은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의 시간이 지난 후,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사건이 마가복음 1장에 나옵니다. 마가복음 1장입니다.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마가복음 1장 10절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셨다고 합니다. 성령님은 비둘기가 아닙니다. 거기에 실제 비둘기는 없었습니다. 아마 성령님을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물건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비둘기가 아니시고, 비둘기 형태로 나타나셨던 적도 없었습니다. 성령님이 마치 비둘기가 사람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 것 같은 어떤 가시적인 형태로 예수님께 내려오셨습니다. 마치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쉬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나 은유일 뿐이었다는 겁니다. 성령님이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는 겁니다.
성령님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잉태되실 때부터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가고 계신 것은 예수님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사역 덕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성령님이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첫째, 하늘의 승인을 의미합니다. 11절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공식적인 승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 다른 공식적인 승인은 15절에 나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메시아를 기다리던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왕이 이제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이 예수님의 신성을 확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신성을 선포하심으로써 예수님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아이심이 확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난받는 종이십니다. 특별한 섬김을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이사야 61장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 42장에서는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이라고 말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사야 61장입니다, “아름다운 소식,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성령님은 변함없는 동역자, 뗄 수 없는 동역자로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계셨지만, 추가적으로 공식적인 선언과 확증, 가시적인 표지가 주어졌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위임받으시고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말이죠. 이는 구약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편이죠. 다윗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영적 삶의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성령님의 역사로 거룩해졌습니다. 다윗이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나에게 기름부으신 것, 특별한 섬김을 위해 나를 특별하게 부르신 것”을 거두지 말아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신성한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성장을 지켜보며 함께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과 전 생애에 걸쳐 예수님을 완전한 메시아, 완전한 구주, 완전한 하나님의 종, 완전한 거룩함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셨습니다. 완전하신 성령님께 순종하신 아들이 완전한 거룩함을 보여주셨죠. 이후에 나타난 성령님의 기름 부음은 이러한 예수님 내면에서의 사역과 구별되는,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 행하셔야 할 특정한 사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역에서 다음 사건은 마가복음 1장 12절에 나옵니다.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신 직후에,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동사는 ‘몰아내다’입니다. 말 그대로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중에도 함께 계셨습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신 것은 시험거리를 없애려고 그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그 시험 속으로 몰아넣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이 생애에서 행하신 모든 일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루아흐 엘로힘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강력하고 맹렬한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역사하며 예수님이 사탄을 대적하시게 했습니다. 그 대결의 끝에서 마태복음 4장 10절은 예수님이 사탄을 물리치셨다고 증거합니다. 사탄을 완전히 제압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이 대결로 몰아넣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떤 의미에서 전투 기획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전략가이십니다. 전투 지형을 파악하고 전사이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전쟁으로 인도하는 전략가이십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사탄과의 전쟁에서 언제나 승리하실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과의 전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역 내내 어둠의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셨습니다. 3년 동안 사역하시면서 예수님은 날마다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항상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사탄과 싸우시도록 함으로써 대적의 모든 영토를 장악할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예수님이 천년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대적의 모든 영토를 점령하시고, 먼저 사탄을 쇠사슬로 결박하신 다음에 영원히 불못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 그대로 예수님을 전쟁 속으로 몰아넣어 원수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셔서 사탄에게 속했던 영토를 예수님의 왕국을 위해 모두 되찾게 하실 것입니다.
그 시험 후에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떻게 시작하셨을까요?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과 같은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모두 물리치신 후에, 누가복음 4장 14절을 보면, 즉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성령님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고, 죽음을 이기고, 실제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모두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베드로가 증언합니다. 베드로는 3년 내내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증언했는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나사렛 예수를 너희도 알겠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 그렇죠?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계셨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들은 모두 성육신의 본질이 완전한 자기 비움이라는 것,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셨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성령님은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거룩한 분으로 빚어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든지, 가르치실 때에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신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치유하실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폭풍을 잠잠하게 하실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에서 유대인들이 “네가 사탄을 힘입어 이런 일을 한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너희가 나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함을 완전하게 구현하신 분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완전하게 행하십니다. 성령의 모든 열매를 다 맺으셨습니다. 성령의 모든 은사를 사용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하실 때에도, 히브리서 9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마주하시고 모든 일을 감당하신 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9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놀라운 구절이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흠 없는 희생제물로 자신의 피를 드리셨는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까? 바로 영원하신 성령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을 통과하게 하신 능력, 십자가를 견디게 하신 능력도 모두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모두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도 성령님이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살아계실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떻습니까? 로마서 1장으로 돌아가 보면, 로마서 1장 3절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합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 4절을 보십시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누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까? 성령님입니다. 성결의 영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은 그 장 마지막 절에서 초대 교회의 찬송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헬라어 구조를 보면 초대 교회 찬송가임이 분명합니다. 경건의 비밀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 곧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 완전한 사람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런 다음에 부활을 다룹니다. 이 절은 부활에 관한 찬송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육신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육체적 부활은 성령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여기서도 다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능력이 성령님이셨음을 증거합니다. 다시 살리신 것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묻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넘겨받으셨나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성령님, 이제 충분합니다. 모든 역할을 다 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나 승천하셨습니다. 40일이 지났고, 그 40일 동안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1장 3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장 3절입니다.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40일 동안 예수님은 설교하고 가르치셨습니다. 2절입니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합니다. 40일 동안의 가르침의 능력을 누가 주셨습니까? 성령이십니다. 성령님이 40일 동안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능력을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사도들에게 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는 또 다른 표현이죠. 이 모든 것을 성령으로 명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생애를 이런 방식으로 살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익숙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성령님께 돌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사탄에게 돌렸기에 예수님이 “너희가 성령을 모독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락방 강화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성령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걸 기억하십니까?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진리의 영이 너희와 함께 거하신다고 합니다. 14장 17절입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어디에 계실 거라고 하십니까?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그런데 어쩌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는 아주 특별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성령님이 제자들과 함께 거하셨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함께 거하신다”란 말은 결국 이런 말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거하고 있으니 성령님도 너희와 함께 거하고 계신 것이다.” 정말이지 멋진 일입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너희 속에 계실 거라고 합니다. 더 좋은 일입니다. “너희는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보았고 이제 그분이 너희 속에 계실 것이다. 너희는 내 속에서 그분의 권능을 보았다. 똑같은 권능이 이제 너희 속에 계시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약속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성령이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너희 안에 계시리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며칠 후면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는 겁니다.
그 전에 요한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에, 22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서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마치 능력을 주시듯이 말이죠. 이보다 앞서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다시 말씀드지만, 성령님은 능력이십니다. 힘이십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같은 의미입니다. “너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지만 아직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를 통해 보고 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성령도 너희와 함께 계신다. 내가 영광스럽게 된 후에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면 그가 너희 속에 계실 것이다."
사도행전 1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로마서 8장은 뭐라고 하나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지난 번에 살펴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라면 성령님이 안에 계신다는 겁니다. 그렇죠? 계속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날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일입니다.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2장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우리는 이제 이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루아흐 엘로힘, 급하고 강한 바람, 이는 바로 성령님의 상징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뿐만 아니라,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사람들 위에 임했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힘과 능력의 또 다른 상징입니다. 4절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믿는 자들은 성령님과 함께 능력도 받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우리의 본보기로 삼아봅시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의 삶에서 행하신 일들이 바로 성령님이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시작해봅시다. 성령님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에게도 생명을 주십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느니라.” 성령님은 거듭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지식이 자라게 하신 분도 성령님이셨고,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령님은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기름 부음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은혜와 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의 원천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말씀을 조명하시는 내면의 교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삶에서 성장의 원동력이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임하신 분도 성령님이셨고, 고린도전서 12장에 따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회심할 때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에게 임한 기름 부음을 받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책임을 이어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일종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성육신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세상을 특별하게 섬기기 위해 구별되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말이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으로 사탄의 모든 간계, 원수의 모든 책략을 물리칩니다.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물리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시험을,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고통과 고난을 이기고 십자가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 분도 성령님이셨습니다. 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가 십자가를 위해 고난을 당할 때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잘 들으십시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가 삶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성령님이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위에 계시는 은혜와 영광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나오셨을 때,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분도 성령님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이 사실이 우리를 로마서 8장으로 데려갑니다.
로마서 8장 11절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보이시나요?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게 하시며, 세례를 주시고, 시험과 유혹에 맞서 승리하게 하시고, 사탄을 물리칠 힘을 주시고, 고난을 참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때가 되면 무덤에서 영생의 존재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그 사이에 성령님이 행하시는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무엇이 된다고 합니까?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은 그리스도께 말씀을 전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선포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우리에게 선포할 능력을 주십니다.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드신다면, 사도행전 2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말하자면 일종의 최종 결과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와 사탄에 맞서 승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난과 승리를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시는 성령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목적은 우리가 훌륭한 증인이 되어, 잘 들으십시오, 지상대명령을 성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은 예수님이 이방인의 빛이 되실 거라는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2편에서, 잘 들으십시오,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궁극적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대한 강력한 증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을 통해서 그 예고편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5절을 보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큰 무리가 모였고,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120명의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성령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목적은 땅 끝까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지상대명령을 성취하는 것이며, 이것을 성령님이 처음 임하신 순간에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인 무리들이 갑자기 알아듣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모두 각각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위대한 대속의 이야기,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구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지상대명령이 성취되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이방 나라를 네게 유업으로 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요한계시록으로 가서 모든 방언과 족속과 백성과 나라의 사람들이 보좌 주위에 모여 있는 모습을 잠깐 보십시오. 이 약속이 성취되고 아버지께서 이방 나라를 아들에게 유업으로 주시는 방법이 바로 여러분과 저와 같은 신자들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정말 놀랍고도 대단한 일입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면, 여러분은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데 있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계실 때보다 하실 일이 훨씬 적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그 누구도 “또 다른 거룩한 분이 나셨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여러분을 영광의 한 단계에서 그 다음 단계로 인도하시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성령님은 여러분을 다시 살리시고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성령님은 계속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잠깐만 더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거 참 잘됐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 긴장을 풀고 성령님이 알아서 일하시게 하면 되겠다.” 마치 “다 내버려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오래된 격언과도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 운동이 있었죠. 케직 운동이라고도 하는 케스윅 운동, 차원 높은 삶, 퀘이커 교도들의 방관주의 운동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모든 놀라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그 빚이 무엇입니까? 육신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육신이 여러분을 위해 해준 것이 뭐가 있습니까? 만약 육신을 따라 산다면 죽을 것인데, 이 부분은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육신에 대해 아무 의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육신의 권세가 꺾였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이제 지배적인 세력이 아닙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일 것입니다. 그러면 살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무엇을 합니까? 남아 있는 몸의 행실을 죽입니다. 남아 있는 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같지 않습니다. 거룩하시고, 악과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과 구별된 ‘거룩하신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물론 우리 주 예수님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이기셨듯이 우리에게도 같은 성령님의 능력이 있고,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실 것이지만, ‘다 내버려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태도는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종류의 방관주의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성경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바울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 죄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뜬구름잡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일에 있어서 성령님은 강력한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책임은, 의무는 여러분 삶에 남아 있는 죄를 죽이기 위해서 성령님 안에 있는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도 귀한 내용을 다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담고 있는 풍성함에 비한다면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이 소중한 성도들이 신자로서 우리 안에서 성령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사역을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이해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성령님을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게 하옵소서. 성령님이 은혜로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부터 받으신 부르심에 신실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에 신실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우리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이것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드시는 성령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일임을 압니다. 우리가 점점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과 같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옵소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사역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를 죽이는 일에 신실하게 해 주셔서 우리가 성령과 아들과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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